우리 아이들의 캐나다 학교생활

우리 아이들의 캐나다 학교생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이웃들의 "쏼라 쏼라"가 어렴풋이 잠을 깨우고 커튼 사이로 강렬한 햇살이 느껴질 때, 이곳 캐나다에 와 있음을 실감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결코 길지 않은 1년여의 타국생활이 낯설지만은 않은 일상으로 자리 매김하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엄마」로서 느껴지는 일련의 감정들이 마음에 와 닿을 때마다 좋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친한 친구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마음처럼 자꾸만 들썩이게 합니다.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한국의 현실에선 너무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 앞에 다가왔을 때,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은(치맛바람) 내가 이민을 선택한 건 꼬마 때부터 성인이 되도록 가져야 했던 배움의 시간들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에 앞서 그 자체로서도 아름답고 소중한 성장의 시간이었음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캐나다에 와서 시작한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부모로서의 우려감과 수줍음을 금방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한국인의 어설픈 영어로의 첫 걸음 이었지만 1년 사이에 한층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건 영어 실력의 발전과 더불어 새롭게 다가서는 아이들의 사고방식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가을에 열렸던 운동회에서 최고학년(7학년)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저학년 아이들을 리드하며 여러 가지 게임을 하고 선생님들은 그저 관망하는 태도였습니다. 한국에선 으레 식전행사로 보여지는 일사불란한 체조나 율동에 감탄하고 나란히 줄서서 달리기 할 땐 내 아이 몇 등 할까? 두근거림도 없지 않았는데 참 경이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무질서하게도 보이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참가하고 있는 아이들 스스로는 재미있는 게임들... 꼭두각시 옷 차려입고 보여주는 귀여운 율동보다 더 많이 흡족했습니다. 작은아이가 미술시간에 만든 공작품을 들고 나오며 6학년 언니랑 같이 만든 것이라는 설명을 할 때 아! 이런 것들이 바로 아이들 학교의 교훈인 「Partnership」의 실천교육 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건물에 고딕체로 써있던 「근면」,「성실」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느낌의 교훈 -----

우리 큰 아이의 반에는 지체부자유아인 중국인 학생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전담 선생님이 늘 함께 하고 있고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친구가 되어 놀아 주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학년도 다른 작은아이가 어느 날 언어도 부자유한 그 아이가 손으로 표시하도록 한 알파벳그림(수화용어) 프린트 물을 가져와 연습하는걸 보면서 참 행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그런 아이와 짝이라도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의 마음일텐데... 복도에서라도 그 아이랑 마주칠 땐 웃으면서 인사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건 역시 환경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 애를 좋아할 수 없을지라도 나보다 못한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교육을 시키는 기본자세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이곳의 교육과정을 보며 한국에서 시작되고 있던 열린교육의 실체가 이곳에서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비비꼬이지 않는 수학문제, 남녀 차별 없이하는 축구. 하키. 농구 등의 체육활동, 꾸준한 컴퓨터교육, 피부로 느끼며 탐구하는 사회, 과학, 2분 음표, 4분 음표가 중요한 것이 아닌 음악 미술 그 자체로서의 창의성과 흥미유발의 학습 요즈음 우리아이들의 숙제를 보고있노라면 대학의 리포트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룹별로 주제를 설정해 주고 그것에 관해 사실성에 관한 탐구목록을 작성하고 단어로 퍼즐도 만들고 짧은 동화도 만들며 그림도 그리는 하나의 프로젝트인데 물론 주제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동물, 식물 등입니다. 반복적인 지식을 암기해서 객관식위주의 시험을 봐서 나오는 점수가 아니라 자기가 노력한 만큼 얻는 점수이므로 어떻게 보면 좀 어려울 수 도 있지만 그 프로젝트라는 것은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각각의 반, 선생님에 따라 주제도 다양해서 신선하게도 느껴지고, 이런 식의 공부가 고등학교까지 계속되고 정작 대학에 가면 자기가 선택한 목표로 한국의 고3학생들 이상으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합니다. 갓 1년 된 영어실력으로 우리 아이가 쓴 동화를 보니 완벽한 문법은 아니더라도 참으로 대견한 생각이 드는 건 몇 년씩배운 어른들의 영어보다 훌륭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거듭되는 교육정책의 수정을 통해서도 계속 그 자리일수 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방식은 한국인의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몇 해가 지나도 그 대로 걸려있는 장롱 속의 옷가지들, 입지 못해도 아까워서 버릴 수 없는 그 마음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고도 남는 교과목 수를 과감히 버려서 줄이지 못하고 가녀린 아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며 읽고 싶은 책 한 권 마음놓고 읽을 수 없는 삭막함과 농구공 쳐 올리며 땀방울을 훔치는 건강한 모습을 머리로밖에 상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역사 과목 같은 것도 우리민족의 순수성이나 정통성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주체성을 확고하고 소중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할 텐데 몇 년, 몇 월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가를 달달 외워서 점수로 나타내야 하니 모두 역사학자가 되는 건 아닐텐데...

그렇다고 한국의 모든 것이 좋지 않고 이곳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힘든 속에서도 바르게 크는 아이들이 많고 풍부한 환경에서도 빗나가는 아이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두서없이 복잡하게 차려진 밥상보다 균형 있고 영양가 있게 차려진 식탁에 내 아이들을 앉히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예외적인 실수와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할 지라도 좀더 트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모국어와 또 다른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영어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본토 아이들 보다 장점이 될 수 있고(학교의 E.S.L 선생님이 이렇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처럼 세계와 교류해야 하는 요즘의 아이들, 그리고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배움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어느 날」내가 가지지 못한 자신감과 용기를 나의 아이들에겐 간직하게 하고 싶어 이국 땅으로 건너오는 모험(?)을 시행하였고, 그로 인해 작은 외로움들을 만날지라도 풍요로워질 아이들의 마음으로 위안을 삼고 싶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대리만족」이라 생각했지만 앞날을 생각해보면 결코 그런 것만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방에 갇혀 빛 바랜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일도 나의 생활일 것이고, 땀방울을 간직한 건강한 미소를 들 여다 보는 일 역시 나의 생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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